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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고질라 그림의 우산과 흰 빵 그림의 우산을 쓴 소년 두 명이 골목을 지나갔다. 찰박찰박 발끝에 닿는 작은 물웅덩이에는 비가 오는데도 마주 잡은 두 손이 작게 비쳐 보였다. 학교 가는 길, 우산을 꼭 잡고 쫑알대며 걷는 오이카와 옆에서 이와이즈미는 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포근하게 톡톡 떨어지는 봄비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늘은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하는 날이 맞는데도 표정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좋긴 하지만 날씨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생겼기 때문인 걸까.

 

“이와쨩 그래서…. 했어?”

 

“….”

 

“이와쨩?”

 

“어? 왜?”

 

“오늘 숙제 했냐고 했는데, 이와쨩 오늘 이상하네~”

 

“했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이와이즈미는 자기도 모르게 오이카와의 말을 반쯤 흘려듣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주 잡은 손의 온기와 상대를 의식하느라 잔뜩 곤두선 감각이 낯설어 입을 열 정신이 없었을 뿐이다. 이와이즈미는 바닥을 보는 척하면서 슬쩍 옆눈으로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는 오이카와를 훔쳐보았다. 장화를 신은 발과 하얀 다리, 반바지, 셔츠, 예쁜 얼굴, 그리고 마주친 눈.

 

“악!”

 

“앗! 왜 그래 이와쨩!”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지레 놀라 소리를 질러버린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앞을 보았지만 놀란 오이카와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 결국 우산으로 슬쩍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췄다.

 

“이와쨩 뭐 잘못한 거 있어? 오늘 진짜 이상해!”

 

“조, 졸려서 그렇다!!”

“…이와쨩이 아침에 졸린 날도 있어? 뭐, 그보다!”

 

“왜?”

 

“오늘은 같이 배구하러 갈 거지?”

 

오이카와의 말에 내렸던 우산을 들어 오이카와를 마주 보았다. 이와이즈미는 그 예쁜 눈에 어린 기대감이 약간 부담스러워 눈을 피하며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음… 오늘 축구하기로 했는데.”

 

“에에!! 나랑 배구하기로 했으면서?!”

 

“…미안.”

 

“치사해! 그래 이와쨩은 축구해! 나 혼자 배구할거야!!”

 

잔뜩 심통 난 얼굴로 고개를 획 돌린 오이카와는 입을 삐죽 내밀고 온몸으로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 꼭 잡은 손은 놓지 않은 채로.

이와이즈미는 부루퉁한 오이카와를 보며 왠지 모르게 그 얼굴이 너무… 뭐랄까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우산을 푹 숙이고 땅을 보았다. 머리와 마주 잡은 손이 너무 뜨거웠다. 이와이즈미는 아마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차피 배구는 같이 못 할 것이었다고 속으로 되뇌면서도 계속 오이카와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화해를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결국 학교에 도착해 버렸다. 처음으로 조용하게 등교한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에 같은 반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와이즈미는 자연스럽게 놓게 된 한쪽 손을 다른 손으로 매만지며 쥐었다 폈다 했다. 왠지 모르게 저린 느낌이었다. 자신의 손을 한참 내려다보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축구하러 간다는 거 거짓말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쪽으론 쳐다도 보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재잘재잘 웃음꽃을 피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이와이즈미는 힘껏 오이카와를 불렀다.

 

“오이카와!!!”

 

“응? 왜, 이와쨩?”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에 약간 안도한 이와이즈미는 그에 힘입어 또 소리쳤다.

 

“오늘 나랑 배구해!!!”

 

“좋아!”

 

“에?”

 

“좋아!!! 역시 축구보다 배구지?”

 

활짝 웃으며 단번에 그러겠다 하는 오이카와에게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이와이즈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울 것 같기도 하고 웃을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와쨩? 어디 아파? 얼굴이 빨개.”

 

멍하게 있는 이와이즈미에게 오이카와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가까이하고 살피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는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심장이 뛰었다.

 

“괘, 괜찮으니까 떨어져.”

 

순순히 밀려난 오이카와는 옆자리에 털썩 앉아 배구에 대해 즐거운 듯 떠들기 시작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가 귓가에 마음에 콕콕 박혀 떠나질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듣고 있던 이와이즈미는 비로소 진짜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얘 좋아하나 봐.’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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