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사이의 밀당은 오이카와의 완패인 듯 했다. 오이카와는 몇 십분 째 밝아질 생각을 안 하는 핸드폰을 노려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천천히 회상했다. 그 시작은 한 달 전,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오후의 쉬는 시간에 갑자기 시작된 연애 이야기였다.
“아, 얘도 슬슬 질린다. 헤어질까.”
“에? 코이즈미군, 연애한지 얼마 안 됐지 않아?”
“한 80일쯤 됐을 걸? 한 달 전이 50일이었으니까.”
“100일도 안 됐는데 벌써 질려?”
“이것 봐봐. 얘는 이렇게 날 좋아하는 티를 엄청 낸다고. 밀당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나 봐. 이러니까 쉽게 질리지. 안 그래, 오이카와군?”
꽤 나쁜 남자네, 코이즈미군.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순식간에 가십의 중심으로 모여든 남자애들 중 하나가 되긴 싫어 저들끼리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걸 가만히 자리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저러다 꼭 후회하더라.
엄마가 저녁마다 꼭 챙겨보는 드라마의 최근 내용도 저렇게 잘해주는 여자에게 질려서 떠난 남자가 시간이 흐른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내용이었지, 아마. 제목이 순정만화의 진실이었던가.
화면 상단 바에 미나쨩이라는 이름이 있는 라인 창을 띄운 핸드폰이 여러 손을 거치는 걸 보면서 책상에 턱을 괸 채로 언제쯤이면 저 지루한 대화가 끝날지를 가늠하고 있던 중에 코이즈미가 돌연 고개만 오이카와 쪽을 향하도록 해서 그의 동의를 구했다. 하아? 도대체 오이카와상은 왜 끌어들이는 거야?
“응? 뭐가?”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 내는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역시 오이카와군도 그런 여자는 쉽게 질린다고 생각하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했는데도 눈치가 없는 건지, 꼭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다시 물어보는 코이즈미군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한숨을 쉬면서 마지못해 대답했다.
“글쎄, 그냥 개인의 연애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도 있잖아?”
“오~. 이게 바로 인기인의 인기 비결인가!”
“에에-. 그렇긴 하지. 그래도 밀당할 줄 아는 여자가 더 재밌지 않아? 쉽게 안 질리고.”
“하긴 나라도 밀당하는 여자가 더 끌리긴 하네.”
“근데 또 너무 튕기면 그것도 별로야, 난.”
“그래도 너무 안 튕기는 것보단 좀 튕기는 게 더 재밌지.”
“오이카와군은?”
딩-동-댕-동.
“앗, 종 쳤다. 코이즈미군,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시간은 무려 영어 시간이라고?”
별로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었는지, 입을 비죽이던 코이즈미군이 재차 제가 원하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얄궂게도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다.
한 번 붙은 불이 단숨에 꺼지긴 힘들어서, 아쉽다는 얼굴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자리가 근처인 애들끼리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난 밀당파. 나도! 난 밀당은 별로. 근데 너무 좋아한다고만 하면 지루하지 않아? 그건 그래. 어느 정도의 밀당은 필요한 법이지.
아직 선생님이 교실에 도착하지 않아서 굳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다 들려 괜히 얼굴이 불퉁해졌다.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처음 들었을 때는 확고하게 후회할 짓은 하는 게 아니라고, 귀담아 들을 필요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건데!
그 쉬는 시간을 끝으로 흥미가 떠나간 주제라 아무도 다시 이와 관련해서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고장난 라디오 마냥 끝없이 되풀이되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티만 내면 쉽게 질리지. 맞아, 연애에 밀당은 필수야. 그만! 그만! 소리 없는 절규와 함께 머리를 격하게 흔들어 봐도, 십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순간에 들었던 문장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눅진하게 들러붙은 껌처럼 내 머리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와이즈미 탓에 꼼짝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저 혼자여야만 했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리고 꼭 오늘이 무슨 날인 것처럼 집으로 가는 길 곳곳이 다 연애 얘기로 가득이었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가게 유리창에 붙어있는 홍보지도. 차라리 보지 않으면 덜할까 싶어 길바닥만 보면서 길을 걷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연애 잡지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는 서점이 있었다.
유독 ‘연애 잘하는 법, 밀당편!’이라고 적힌 문구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을 때, 그리고 내려다본 휴대폰에 아무런 팝업 알람이 떠있지 않은 걸 확인했을 때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이와이즈미랑 사귄 지 한 달 째, 밀당의 필요성에 대해 들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밀당을 모르는 제게 벌써 질렸는지 걱정 중이다.
“결국 사버렸어….”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잡지를 들고 나오다 유리창에 비친 잡지의 홍보문구가 부끄러워 급히 잡지를 가방 속에 쑤셔 넣다시피 집어넣었다. 사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막상 사고 보니 속 내용이 엄청 궁금해졌다.
정 궁금하면 지금 열어서 봐도 괜찮지만, 이런 부끄러운 제목의 잡지를 밖에서 볼 용기는 없으므로 최대한 빨리 집에 도착하기 위해 달린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속도로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본 잡지의 내용은 지루하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봤을 정도였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보겠어.”
결심한 다음 날부터 잡지에 있던 내용을 하나하나 실천해봤으나 돌아오는 건 기대와 다른 결과밖에 없었더란다.
연락을 평소보다 뜸하게 했더니 신경 쓰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만족스러워했나?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표현하던 걸 꾹꾹 눌러 참고 10번 중 2번 정도만 했는데도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 날 이후 한 데이트는 모두 일부러 평소보다 신경 덜 썼는데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데이트 할 때마다 스티커 사진 찍고! 셋팅이 완벽하지 않아도 물론 오이카와상은 잘 생겼지만! 그래도 완벽하지 않은 오이카와상과 이와쨩의 커플 스티커 사진이라니!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데이트 중에는 상대에게만 집중한다는 신념도 깨고 종종 핸드폰도 만졌건만 고개 한 번 갸웃거린 게 끝. 오히려 그 이후론 이와쨩이 오이카와상보다 더 만졌어!
심지어 데이트 중간 중간에 피곤한 척도 해보고 몇몇 데이트는 피곤하니까 집에 일찍 가자고 했더니 도리어 오버워크 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며 당장 돌아가서 쉬라고 혼났다.
“이게 뭐야! 모조리 다 실패잖아! 유명하고 용하다더니! 순 다 거짓말이야!!”
오늘도 평소보다 일찍 헤어졌건만, 헤어진 지 2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밝아질 기미가 없는 액정화면이 야속하기만 했다. 옷을 정리하느라 바쁜 게 아닐까? 밖에 나갔다 왔으니까 씻느라 늦는 걸수도 있지. 피곤해서 잠든 걸 수도 있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렇게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내면서 이와이즈미의 연락을 기다린 지 2시간 30분이 되었을 때,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오이카와가 핸드폰을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까맣기만 했던 화면이 환해졌다.
“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화면을 밝힌 알람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 이때까지 한계가 아슬아슬한지도 모르고 그저 담아두기만 했던 서운함이 제 존재를 과시하듯 한꺼번에 흘러넘쳤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님이 상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SNS를 할 시간은 있으면서, 왜 오이카와상한테는, 연락 하나가 없어…?”
확인하지 못한 알람이 있나 계속해서 상단 바를 늘려서 확인해 봐도 화면 속 상단 바는 이와이즈미의 SNS 팝업 알림을 제외하면 어떠한 알림도 없이 깨끗했다.
이렇게 상단 바가 깔끔해진 것도, 다른 알림에 이와쨩의 연락이 묻힐까봐… 이와쨩 관련 알림만 빼고 다 오프해서 그런 건데. 그 행동이 이렇게 상처로 돌아올 줄은 과거의 저도 몰랐을 터였다.
이게 뭐라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드는 건지. 피곤하다고 하고 헤어졌으니까 라인 보내면 깰까봐 SNS로 한 거 아닐까? 알림 보면 연락해 같은 걸 수도 있다고 애써 위안을 해보며 떨리는 손가락을 팝업알림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오이카와는 눈가로 몰리는 열을 느끼며 익숙한 11자리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이와쨩 성격에 라인으로 보냈으면 보냈지, 굳이 SNS를 통해서 전하려고 하지 않을 거란 건 이 오이카와상이 제일 잘 아는데.
이와이즈미 하지메 3분 전
(롤에서 승리한 화면을 캡쳐한 사진)
난 매점에서 파는 튀김두부 들어간 야키소바 아니면 안 먹는다.
흔한 컬러링 하나 없이 번호 주인마냥 기본에 충실한 연결음이 끊기고 들리는 목소리에 날카로운 말부터 튀어나간 건 불가항력이었다.
“여보세요?”
“게임은 잘 했어? 아니, 잘 했겠지. 그러니까 매점 야키소바 얘기나 하고 있었을 거고.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 그치?”
“오이카와.”
“아까 오이카와상이 뭐라고 하고 들어갔게?”
“피곤하다고.”
“그런데 애인인 오이카와상한테 그 흔한 잘 들어갔냐는 연락 하나 할 시간은 없고 반 친구랑 한 내기 게임에서 이긴 걸 자랑할 시간은 있나봐?”
말을 할수록 목이 메여왔다. 왜 말을 하는 건 오이카와상인데 상처받는 것도 오이카와상일까. 제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 차이에 숨이 막혔다.
“진정해.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오이카와상이 항상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다 줄 것처럼 구니까 이와쨩도 오이카와상이 만만해? 오이카와상은 이와쨩이 나오라고 하면 다 나와야 해? 오이카와상이 왜. 이와쨩은 아닌데 오이카와상은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잠시간 이어진 침묵 사이로 선연히 느껴지는 비참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오이카와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한 단어를 뱉으려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벌렸을 때 이때까지 변명 하나 없었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말을 가로챘다.
“입술 깨물지 말고, 질린 것도 아니니까 삽질은 그만해, 멍청아.”
나즈막한 한숨과 함께 들려온 문장에 습관적으로 입술을 짓씹던 걸 멈추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네 녀석이 어디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직감상 대부분이 오해인 것 같으니까 나한테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예전에 중학생 때 딱 한 번 오이카와의 오해로 이와이즈미와 전화로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다.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크게 싸운 건 그게 처음이라 오이카와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그저 가만히만 있었다.
만약 그 때 이와이즈미가 먼저 손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지금과 달리 그대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을지도 몰랐다. 그 이후로는 크게 싸운 적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해라는 단어에 그 때 화해하면서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목소리로만 대화하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니까 앞으로는 싸움이 커질 기미가 보이면 만나서 대화하자.
“그리고 누가 나오랬냐. 집 앞이니까 문이나 열어. 바보야. 만나기 싫으면 여기서 전화로라도 해명하게 해줘. 여기에 서 있으면 네 방 창문으로 보일 거 아냐.”
어릴 적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와 전화 너머의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면서 오이카와는 홀린 듯이 아래로 내려가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격정적이었던 전화 통화와는 다르게 조용히 계단을 지나 방문을 열고 온전한 오이카와의 공간으로 들어간 둘은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신호로 이와이즈미는 팔을 벌렸고 오이카와는 그 품에 안기며 여태껏 참아온 서러움을 흘렸다.
이와이즈미가 체격은 저보다 클지 몰라도 속은 한 없이 여린 제 애인의 등을 쓸어내리며 2주 동안 자신만 알고 있었던 사실을 전했다.
“2주 전, 이동 수업 교실로 이동하면서 네 교실을 지나치게 됐어. 짧게 인사하려고 너를 찾았는데 너랑 네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있더라고.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네 친구들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잘 들리더라고.”
“응.”
“그리고 엄마 심부름 때문에 시내를 지나가는데 서점 근처에 서있던 네가 보였어. 그래서 네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게 뭔지 궁금해서 그 자리에 서봤는데 연애 잡지 홍보포스터가 보이더라. 너라면 그 잡지를 샀을 것 같아서 나도 사서 봤어.”
“…그래서?”
“그러니까 그 다음 날의 네 이상 행동의 이유가 보이더라고. 연락 뜸하게 하기. 좋아한다는 티 덜 내기. 평소보다 일찍 헤어지기 등등.”
모를 거라 생각했던 이가 사실 전부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럼, 다 알고…!
“맞아, 일부러 그런 거야. 밀당한다고 덜 차려입은 거 귀엽더라. 그리고 연락만 뜸하게 하면 뭐 하냐. 표정관리는 하나도 안 돼서 나 좋아하는 거 다 보이는데.”
생각지 못했던 답변에 끊임없이 흐르던 눈물이 단번에 멈췄다. 그저 제게 질려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워진 서러움만큼 배신감이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거짓말쟁이!”
오이카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배신감으로 얼룩진 얼굴로 제 품에서 멀어진 오이카와를 보던 이와이즈미가 손을 뻗어 아직도 오이카와의 얼굴에서 아롱이는 감정의 파편을 걷어냈다.
“그 잡지를 보고 나서 오후 내내 생각했어. 네가 왜 갑자기 밀당을 하고 싶어 할까. 밀당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그거잖아. 상대의 마음이 자신에게 오랫동안 머무르길 바라는 거.”
“…맞아. 이와쨩의 옆에 오래 있고 싶었어.”
“누구든 직접 잃어보지 않고서는 제게 뭐가 소중한지 곧잘 잊어버리잖아. 나는 밀당이라는 게 그래서 생겨난 거라고 생각해. 정말로 잃어버리기 전에 상대가 알아채주길 바라서.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네가 밀당을 시도해볼 만큼 내가 그렇게 네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되돌아보게 되더라고.”
중학교 3학년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와쨩은 늘 제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사람이었다. 바로 앞만 내다보기 바쁜 저와 다르게 먼 미래와 과거 둘 다 볼 수 있는 사람.
정말 많은 걸 생각했다는 게 확연히 보이는 말에 서러움이고 배신감이고 할 거 없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찌꺼기 하나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가 제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이 기회에 확실히 하고 싶었어. 네가 우리 둘의 마음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게. 그리고 미안하다. 잠시 동안이나마 무섭게 해서.”
평소 부끄럽다며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했던 것과 다르게 한 없이 솔직해진 이와이즈미에게 동화되어 오이카와도 제가 느꼈던 것을 숨김없이 내보였다.
“맞아. 이 2주 동안 이와쨩이 진짜로 오이카와상한테 질려버린 거면 어떻게 하지. 이미 이와쨩이 없는 미래는 생각할 수도 없게 돼버렸는데. 이런 생각으로 무서웠었어.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이렇게 오이카와상에게 와서 솔직하게 얘기해줬잖아.”
“네가 다시는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게끔 노력할게.”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다시금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 오이카와가 한 발자국 멀어졌던 만큼 다시 다가가 이와이즈미를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도록 꽉 끌어안았다.
우리들의 연애 감정은 상상하던 것처럼 분홍빛이지도, 솜사탕처럼 달콤하지도, 소설처럼 매일 설레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 둘에겐 서로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기반으로 한 신뢰가 있었다.
일상처럼 서로를 찾고, 서로가 필요할 때면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고, 다른 데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롯하게 서로에게 집중했다.
“이와쨩, 키스해줘.”
“사랑해, 오이카와.”
그러니까 우리 둘 사이의 마음이 연애 감정이라는 단어에서 으레 떠올리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그러지 않아도 제 옆에 있어줄 걸 아니까.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천천히 오이카와의 얼굴과 가까워지고 마침내 둘의 입술이 닿았을 때,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서로의 숨결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동시에 눈을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이카와상이 이와쨩을 사랑하는 건 숨 쉬는 것과도 같은 것 같아. 내게도 마찬가지다, 삽질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