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오이카와는 팀에서 알아주는 술꾼으로 주량이 3병 반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량이 센 만큼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다거나 정신을 잃고 널브러지는 일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상황이, 다들 당황스럽고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씨이... 못섕긴 이아쨩 주제에에에...”
훌쩍, 코를 들이마시며 손으로 테이블 위를 더듬는 오이카와는 목덜미와 귀까지 벌게진 채로 테이블과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남이라도 시뻘건 얼굴의 볼 한 쪽이 눌려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널브러져있으니 차마 눈 뜨고는 못 봐줄 꼴이었다. 테이블을 더듬는 손끝에 술잔이 닿는다. 손 안에 쏙 들어올 작은 잔을 움켜쥐고 제 쪽으로 질질 끌고 온 오이카와는 방금까지 늘어져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기운차게 벌떡 일어나 잔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술병을 잡았다. 이미 반 정도 사라진 술병을 위태롭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주위에 있던 모두가 차마 무어라 말리지는 못하고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술을 질질 흘린 것도 모자라 아예 잔에 넘치게 따라버린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만 내쉬었다. 가득 차서 위태롭게 출렁이는 술잔을 용케도 입에 가져간 오이카와는 그대로 잔을 비웠다. 쾅. 저러다 잔이 깨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게 내려놓은 오이카와는 제 뒤에 놓인 재킷의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을 켜 뚫어져라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제 옷 위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 마시고 핸드폰 보고, 술 마시고 핸드폰 보고. 그러다가 주위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발음이 죄다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되풀이했다. 술자리가 세 시간 째에 접어들었을 땐 오이카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렸다. 새로 주문한 병까지 텅 비어버리고 다시 오이카와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을 때, 보다 못한 쿠로오가-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렸지만- 다가와 오이카와를 살살 흔들었다.
“어이, 오이카와. 이제 적당히 마시고 집에 가는 게 어때?”
물론 친절한 쿠로오 씨가 직접 택시도 잡아줄 테니까 이제 슬슬 그만 집에 가라. 너 이러고 있는 거 때문에 다른 애들도 그렇고 보쿠토도 쫄아서 저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야! 쫄긴 누가 쫄아! 쿠로오의 말 덕분이었을까, 오이카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흐어엉... 쿠러쨔앙!”
쿠로오를 제물로 삼았다.
오이카와의 말에 따르자면 지금 오이카와가 이렇게 술에 찌들어 온갖 민폐를 끼치고 있는 이유는 다들 예상했듯이 이와이즈미였다. 원래라면 이와이즈미도 이 술자리에 끼어있어야 했지만, 선약이 있다며 연습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떠나버렸다. 보통 때라면 오이카와도 조금 투덜거리고 말았겠지만, 오늘은 보통 때랑은 달랐다. 그 선약이 무려 여자와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저를 기다리고 있던 여자와 나란히 체육관을 나서는 모습을 오이카와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더란다. 그 여자야! 그 여우같은 계집애! 허엉... 바보 이와쨩이 고 여우한테 홀려버렸다고! 그 여자가 약속을 거절당한 저를 보며 웃었다느니,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자꾸 보이길래 불안했다느니 하며 쿠로오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던 오이카와는 하소연을 넘어 망상까지 줄줄 읊어대었고 결국 오이카와의 상상속의 이와이즈미는 그 여자와 결혼까지 하여 저 보란 듯 웃고 있기에 이르렀다. 쿠로오는 질린 표정으로 오이카와의 말에 네에, 네에 하며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구석에 몰려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으로 전화를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엑스 자를 만들어보였다. 이와이즈미와 연락이 안 되는 것이다. 쿠로오는 속으로 망했다를 연발하며 일단 저에게 엉겨붙어있는 오이카와를 떼어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분명히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소꿉친구라는 것을 빼고,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여자 친구 때문에 이렇게 난리를 칠 사이가 아니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식적인 것이고,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현재 공표만 안 했을 뿐이지 국가대표 팀 내의 공명한 커플임에 틀림없었다. 두 사람 다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더 매달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친구가 아닌 사랑, 즉 연애 감정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주위에서 오이카와에게 자꾸 고백을 해라, 직구로 물어봐라 얘기를 하고 등을 떠밀지만 오이카와는 늘 고개를 젓곤 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이와이즈미의 애매한 선긋기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 있으면서도 오이카와가 좀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이와이즈미는 어쩐 일인지 오이카와를 밀어내거나, 아니면 자기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오이카와는 겉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이와쨩 너무해 등을 외치곤 했지만 속으로는 철렁했다. 이와이즈미에게 너무 깊이 들어가려고 한 나머지 친구라는 이름의 이와이즈미 마저 잃어버릴 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런 속앓이를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가 꽤나 심했던지 결국 오이카와는 오늘 펑 터지고만 것이다. 하소연과 망상을 넘어 서러운 눈물까지 토해내는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말없이 다독여줄 수밖에 없었다. 눈가가 붉게 짓무르도록 울고 나서인지 오이카와는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고, 이제야 조용해진 내부에 다들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재킷을 털어 오이카와에게 걸쳐준 쿠로오는 직접 이와이즈미에게 전화를 하려 핸드폰을 찾았고 이와이즈미에게 전화를 걸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 문 쪽을 돌아보았을 때, 거기엔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댄 채 곤란하다는 듯 웃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볼 수 있었다.
“너, 너 대체 언제 왔어?”
“오이카와 울다 지쳐서 잠들 때 쯤?”
모두의 경악한 시선을 받으면서 이와이즈미는 성큼성큼 걸어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걸쳐진 재킷을 반듯하게 입히고 한 팔로 오이카와가 넘어지지 않게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오이카와의 따끈한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오이카와.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들려서일까, 오이카와가 눈을 떴고, 멍하니 저를 쳐다보는 오이카와를 보고 살풋 웃던 이와이즈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집에 갈까, 토오루?”
“응…….”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뻗어 이와이즈미의 품에 파고드는 오이카와를 가뿐하게 안아들어 촉촉이 젖은 눈가에 입까지 맞춘 이와이즈미는 입까지 술값은 나중에 주겠다며 그대로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사라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쿠로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사이의 밀당은 오이카와의 완패인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