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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갑작스러운 비였다.

 

“아...비다...어쩌지...”

오이카와 토오루는 창문을 보다가 사물함에서 오랫동안 넣어져 있는 우산을 마지못해 들었다.

 

고질라 그림이 우산에 새겨져 있었다.

 

[비 온다. 우산 없지? 바보카와. - 이와이즈미 하지메]

 

언제였던가. 주소록에 ‘이와쨩♥’이라 저장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소꿉친구의 전화번호를 저장했을 때는 그저 분명 장난과 애정만이 가득 했던 것 같다.

 

아니, 자각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 자각이 없었다. 너를 사랑한다는 자각이 없었다.

 

네가 늘 하던 장난들은 내게는 씁쓸하면서도 놓치기 싫은 손길이 되었고, 내게 했던 조금은 거친 그 말들은 내게만 보여주는 애정인가 싶어 아프게 좋았다.

 

[바보 아니거든! 우산 있어!]

 

오이카와는 문자의 답장을 하면서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보내기를 누르려는 찰나, 정문에 서있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보았다. 그의 손은 우산을 하나 더 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손에 있던 우산을 서둘러 접어 가방에 넣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면서 말했다.

 

“이와쨩? 오이카와씨 마중 나온 거야? 걱정되었어?”

 

이와이즈미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시끄러워. 우산 있으면 있다고 빨리빨리 말해야지 멍청카와!”

 

“너무해! 기다리면 기다린다고 말하지! 먼저 간다고 말했으면서...”

 

뽀로통한 표정을 짓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면서 이와이즈미는 살짝 웃었다.

 

이와이즈미가 쓰고 있었던 우산은 하얀 빵 무늬로 가득 했다.

 

다른 손에 있는 민무늬의 파란 우산을 오이카와에게 건네주었다.

 

“자, 우산이나 써. 이왕 가져왔으니까.”

 

보슬보슬 내리는 겨울비와 입김을 호오 거리면서 조잘거리는 오이카와 토오루.

 

내가 제일 아끼던 고질라 우산을 들고 도망간 날, 널 놀릴 거라고 나는 네가 아끼던 하얀 빵 무늬의 우산을 가지고 왔었다. 나는 네가 네 우산을 가지러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다. 너의 집에서 찾아오려고 했지만 우산은 없었고 너는 잃어버린 척 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나는 눈치 챘다. 예전부터 너는 내게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나와 마주치지 않고 내 귀를 쳐다보니까. 그날 너는 내 귀만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우산하나 바꾼 셈 하고 나는 네 우산을 쓰고 다녔다. 너는 내 우산을 쓰지 않았었고 나는 너의 사물함에서 우연히 나의 것을 보게 되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넌 그 우산을 쓰지 않았고, 혼자 집에 가는 날에만 그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내가 없으면 너는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내가 모르길 바라는 것인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 뭘 기대하는 거야?

 

“공부는 다 했냐? 수험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더 있겠다고 그랬잖아.”

 

“이와쨩은 치사하게 먼저 가버리고. 흥이다. 이와쨩도 수험공부 할 거라고 했잖아!”

 

“오늘은 할 기분이 아니었어. 그리고 너는 일기예보도 안보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등을 세게 때렸다. 얼얼해진 등을 문지르면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소리쳤다.

 

“폭력은 나쁜 거야! 지성인이면 지성인답게 대화로 이야기 해야지!”

 

“뭐, 불만 있냐. 그럼 혼자 가던가.”

 

“아앗, 치사해! 나빠!”

 

정말 치사해. 이와쨩은 치사하다. 내가 아끼던 우산을 들고 비오는 날이면 쓰고 다닌다. 물론 저 우산에는 내가 더 잘 어울리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은 괜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와쨩의 고질라 우산을 들고 온 것은 정말 한 순간의 충동이었다. 뒤에서 이와쨩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온 후 매일 매일 돌려주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늘 돌려주지 못했다. 아니, 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쨩은 그 이후 상관없다는 듯이 내 우산을 쓰고 다녔다. 처음에는 이와쨩은 정말 무심하고 둔하고 멍청해 라고 생각했다가 그럼에도 서로의 물건이 각자에게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아서 나는 비가 오는 날의 이와쨩을 보는 것이 좋았다. 비록 그 앞에 고질라 우산을 쓰고 간 적은 없었지만.

 

“이와쨩, 이와쨩, 찐빵이다. 우리 찐빵먹자.”

 

“저녁 먹을 시간이야, 바보야.”

 

“그렇지만...딱 하나만...!하나로 나눠먹자!!”

 

“으이구...”

 

“헤헤. 찐빵하나 주세요!”

 

방금 갓 찐 찐빵은 무척이나 맛있는 향을 풍기고 있었다. 반을 갈라 후후 부는 사이에 오이카와의 어깨에 걸려있던 우산은 점점 아래로 떨어져 오이카와의 목을 지나 땅에 떨어지려 하자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면서 오이카와의 우산을 잡아주었다. 배시시 웃으며 오이카와는 팥이 가득한 찐빵을 이와이즈미의 입에 물려주었고 이와이즈미는 한입 베어 물으며 말했다.

 

“맛있네.”

 

“그렇지? 아, 이제 우산 내가 들게.”

 

“덜렁카와. 우산을 들고 있으면서 빵을 양손으로 잡으려 하니까 우산이 떨어지려고 하지.”

 

“아니다~평소에는 잘만 우산 들고 다녔다구!”

 

“찐빵보고 너무 좋았어? 먹보카와네 완전.”

 

아니야! 하고 소리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하얀 찐빵을 물고 있는 너는 꼭 동화에 나오는 소년 같았다. 물론 소년치고 크기는 했지만 얼굴이 어려보이니 괜찮으려나.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걸 확신하게된 것은 조금 오래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그보다는 조금 후. 그 후 나는 네게 조금 더 장난을 쳤고 조금 더 너와 함께 있었다. 네가 내가 없을 때 내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네가 무언가가 된 것 같은 약간의 특별함과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여기 묻었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뺨에 묻은 팥 앙금을 자신의 뺨으로 방향을 톡톡 가리키면서 알려주었다. 스스로의 뺨에 묻은 앙금을 엄지손가락으로 훑어내면서 오이카와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는 이와쨩도 묻었는데?”

 

“응? 어디?”

 

“여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입가에 묻은 앙금을 손가락으로 떼어냈다.

 

“그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데.”

 

“그 정도는 오이카와씨가 해줄 수도 있지 뭐~”

 

어느덧 각자의 집 앞 갈림길에 선 두 사람.

 

“그럼 내일 보자 이와쨩~ 일찍 자야지 키 크는 거 알지?”

 

“죽고 싶냐? 너야말로 저녁 먹고 어서 자.”

 

“네에~”

 

서로 등을 돌리며 집으로 가려는 순간. 이와이즈미가 말했다.

 

“야, 오이카와 내일 비 온다니까. 네 가방에 있는 우산 쓰고 와.”

 

암묵적으로 서로의 우산에 대해 말하지 않던 두 명 중 한명인 내가 먼저 규칙을 깨고 말했다.

 

“에...?”

 

“네 가방에 있는 고질라 우산. 내일 쓰고 오라고. 나도 흰 빵 우산 쓸 테니까.”

 

“바보~, 이와쨩은 지금도 쓰고 있잖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애썼다.

“좋아해.”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내뱉은 그 말은 오이카와를 울상 짓게 만들기에는 넘치는 말이었다.

 

다음날,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 고질라 그림의 우산과 흰 빵 그림의 우산을 쓴 소년 두 명이 골목을 지나갔다.

 

"연애감정"

​첫 문장, 비가 내렸다.

미오 -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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