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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그들의 연애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있지- 사랑하는 사람이랑 성인이 되는 해에 같이 신년 참배 하고 싶어. 서로 사랑하자고 소원도 빌면서.’

 

중학교 시절, 서로 연인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오이카와 녀석은 신년참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땐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막상 때가 되니 그 상대가 나였으면 하는 아주 작은 기대를 해버리고 만다.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쇼파에 앉았다 일어섰다, 불안한 기색으로 집 안을 왔다 갔다 계속 돌아다니다 결국 다시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켠다. 화면에 적혀있는 날짜, 12월 31일. 오늘이 바로 디데이다. 10시 30분. 한참을 망설이다 뭉툭한 손으로 자판을 꾹꾹 누른다.

 

[뭐하냐.] 바로 답장이 온다.

[그냥 티비 보는 중.]

[11시 반까지 집 앞으로 나와.]

[이 시간에 갑자기?]

[같이 참배 가게.]

[알았어.]

 

긍정의 대답을 받곤 한시름 놓는 이와이즈미였다. 뭐부터 해야 하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겨우 정신을 다 잡곤 옷장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 평소라면 아오바죠사이 라고 적혀있는 돕바를 꺼내 입었을 테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고심 끝에 그에게 어울리는 깔끔한 네이비 점퍼를 꺼내 들었다. 점퍼를 걸치곤 목도리를 챙긴다. 이 목도리의 주인은 단연 오이카와였다. 추우면 오이카와 목에 둘둘 둘러주는게 이와이즈미의 습관 아닌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11시 30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라고 적혀있는 현관 앞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 잡고 시간에 맞춰 나온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 갑자기 웬 참배야..

 

투덜거리며 대충 돕바를 입은 오이카와가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그의 투정도 잠시 평소와 다른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잠시 벙 찐 얼굴을 하다 이내

 

- 이와쨩 잠깐만....!!!

 

하곤 우당탕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잠시 후 코트에, 니트에, 구두에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오이카와가 서둘러 나온다. 그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피식 웃으며 오이카와에게 집에서 챙겨온 목도리를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하게 둘러준다.

 

- 안 춥냐. 목만 휑하잖아.

- 으응..! 괜찮아..!

 

힐긋 바라보곤 ‘오늘은 왠지 더 다정하네.’ 작은 변화도 단번에 알아채는 오이카와였다.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말없이 함께 걸어간다. 이윽고 신사에 다다르자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동전을 던지고, 줄 끝에 매달려 있는 종을 흔들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아마 둘은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길, 서로 사랑하고 싶어요.’ 소원을 빌곤 이와이즈미는 감주를 받아 오이카와에게 건넨다.

 

- 자, 마셔.

- ...잘도 기억했네. 이와쨩도 나랑 같은 소원 빌었지?

- 어. 같은 소원이야.

 

조용히 감주만 홀짝이던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와 눈을 맞춘다. 12시. 새해가 밝았다는 말과 함께 종소리가 신사 내에 울려 펴진다. 둘은 동시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려는데 그 타이밍도 너무 똑같아 결국 웃음이 터졌다.

 

- 이와쨩. 이젠 친구 아니야, 우리.

- 알아. 모르고 같이 참배 오자고 했겠냐.

- 이럴 때만 섬세해, 하여튼.

- 앞으로 잘 부탁한다. ...토오루.

- 와, 그거 반칙이다. 하지메.

 

해가 바뀐 1월 1일 12시. 그들의 새로운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됐다.

배꽃 -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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