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새로운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됐다, 라고 말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껏 친구였으며 지금도 친구이고 앞으로도 친구로 남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둘 사이에, 친구라는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거라고는 눈곱만치도 생각지 못했다. 그들의 관계를 가장 답답해 했던 것도, 관계의 변화에 뛸 듯이 기뻐했던 것도 결국 그들의 주변인들 뿐이었는데, 주변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진작 좀 되지 그랬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 사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문제 삼을 만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 사이를 정의하는 단어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그게 다였다. 하나마키 타카히로의 반응을 본 오이카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랑 이와쨩이 사귀는 게 그렇게 놀라워?”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던 하나마키 옆에 선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도 했다. “친구끼리 사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러냐.” 대수지. 그 옆에 서 있던 마츠카와 잇세이가 거들었다. “니들이 친구 사이면 나는 친구가 없어. 그러니까 대수야.” 그 한 마디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꿉친구는 원래 다 이렇지 않아?” ““아니거든?””
마츠카와의 주장처럼 그들의 우정 행각에 대해 거론하자면 밑도 끝도 없고, 심지어 그게 일반적인 친구 사이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는 걸 감안했을 때 그들의 관계가 특별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있기는 했으나 폭언을 퍼붓는 이는 없었고, 그들을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심각할 고찰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이러한 반응을 목도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렇다고 주변인들을 매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변인들을 놀라워했으며 때때로 좋은 친구를 얻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연기였지만. 아무튼 그들의 관계 변화는 주변인들에게 아주 좋은 일이었다. 더 이상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쨩.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추운 밤거리를 걷던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공기가 찬 탓인지 세 글자를 입에 담는 순간에도 입김이 허옇게 새어나왔다. 이와이즈미는 대답 대신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나가 인정할 만큼 잘생긴 조각상 같은 남자가 제 연인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특별했기에 이 특별함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실감할 날이 별로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여러 번 시야가 어두워져도 눈앞의 남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왜. 내가 이와쨩을 좋아하긴 하는 걸까? 또 뭔 소리야. 아니, 남들한테 너무 들어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네가 날 좋아한다고? 응. 내가 이와쨩을 좋아한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이와이즈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저 또한 그랬던 것이다. 지금껏 오이카와를 좋아해왔기에 그렇게 대했던 거란 말을 들으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었고, 지금껏 지내온 시간으로 미루어 볼 때 오이카와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수준일 것 같았고, 살면서 한 번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옆에 끼고 살아보고도 싶었다. 눈 호강도 이정도면 꽤 괜찮지 않은가. 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나도 너 안 좋아할 수도 있어. 아니, 어떻게 오이카와 씨를 싫어할 수가 있어? 너무하지 않아? 싫어한다고는 안 했거든? 멍청아. 안 좋아하는 게 싫어하는 거지! 내가 널 좋아했으면 좋겠냐? 왜 말이 그렇게 돼? 좋아해야 좋아하는 거잖아. 그건……, 그러네. 오이카와가 금방 입을 다물었다. 저 표정은 ‘지긴 졌는데 인정하긴 싫은’ 표정이었다. 앗싸.
물론 질문에 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답을 찾을 생각도 없긴 했다. 왜냐하면 걸어서 도착한 곳이 오이카와의 자취방이었기 때문이다. 이와이즈미는 지금까지 이 문을 단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는데,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무릇 연인이 들어가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제가 정말로 오이카와를 좋아하는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뭐가 됐든 이 문을 열고 들어갈 권리가 생긴 셈이니까. 조만간 방을 정리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여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 화장실 청소해야 하는데. 이와쨩이 대신 좀 해줄래? 대가는? 음-. 뽀뽀? 까분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