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진동에 휴대폰을 침대 위로 떨어뜨리고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듯 움켜쥐었다. 속에서 곪은 상처가 터지지 못해 아파와 얼굴을 구겼다. 이와쨩.. 이와쨩..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부르는 것 조차 상처가 되었다.
“문 열어!”
철문을 주먹으로 두드린다. 자물쇠뿐만 아니라 잠금 쇠까지 걸어둬 열리지 않는 문을 덜컹덜컹, 흔들고 소리쳤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바닥에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 듣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심장에서 막힌 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입을 열었는데도 뱉어내질 못했다.
“젠장, 오이카와!”
이 집은 너와 나의 집이다. 네가 가진 열쇠로 열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잠금 쇠를 달면서도 이걸 쓸 일은 없겠구나― 했었다. 잘 때나 쓰겠지, 했던 것을 이와이즈미에게 썼다.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절대 열리지 않을 문을 열겠다며 낑낑거리다 포기하고 소리칠 그를 안다. 그러다 나중에는 사람을 부르든 힘을 쓰든 해서 어떻게든 들어올 그를 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뱉질 못하는 이름을 불렀다.
“나와서 얼굴을 비추든, 전화를 받든, 둘 중 하나는 하란 말이야, 이 멍청아!”
여전히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 화면에 뜬 부재중 기록이 30을 넘겼다. 받을 때 까지 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기다리는 전화가 아니었다. 내가 기다리는 전화는 어느 때처럼 받으면 웃을 수 있는 전화였다. 아파도 좋았다. 오늘이 없어지면 좋을 텐데. 숨길 수 있던 날이었으면, 모르던 날이었으면 기쁘게 받았을 전화였다.
고민이든, 무슨 일이든 생긴다면 숨기려 해도 언제나 캐치해서 물어주고 들어주던 전화, 짜증도 내고 잔소리도 듣지만 결국 그 모든 게 나를 위한 전화 속에서 웃을 수 있었다. 같이 살면서도 따로 있던 네가 아니라, 네 전화에서 쉴 수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네 전화가 아닌 웃을 수 있는 전화였다.
“제발 전화 좀 받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비척비척 걸어가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갔어..?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와쨩.. 쇳소리마냥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소리가 나왔다. 갔다. 갔나보다. 무리도 아니지. 하지만 슬퍼서 고개를 숙였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좋아한다. 연애감정으로서, 친구가 아닌.
대학교를 다니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같이 엇으니까, 옆집이 한 집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비싼 도쿄생활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야지 하는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같이 못 살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고 나름 잘 살았다. 음식은 서로의 취향을 잘 아니까 문제없었다. 생활패턴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시간표와 일정을 보며 당번을 정해 집안일을 했고 참으로 이상적인 룸메이트 생활을 했다. 남들이 부럽다고 말할 정도여서 으쓱하기까지 했다. 그래 했었다.
“야, 나 오늘 늦는다.”
“에? 왜? 오늘 이와쨩이 좋아하는 튀김두부 할건데.”
“데이트 있어. 기다리지 말고 너 먼저 밥 먹고 쉬어라.”
내가 계속 같았더라면 우리는 끝까지 좋은 룸메이트로서 지내다 취업이든 연애든 아니면 다른 이유로서 이별을 했을 것이다.
“미안, 헤어지자.”
“토오루군, 어째서..?”
“미안해.”
너의 연애 소식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연애를 하면서 가볍게 만나고 이별했던 것을 이제야 천천히 돌이켜보게 되었다.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부딪혔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진심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승낙했다가 지겨워지면 그만두는 짓을 반복했다. 그들의 진심과 감정에 대한 기만이었다. 스스로가 한 짓을 알게 되자 두려워졌다. 지금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며 그래도 제가 제일 아프다 울었다.
“오늘도 데이트?”
“어. 오늘도 먼저 자라.”
네가 연애를 한다. 기본 화면이었던 프로필에 너와 누군지 모르는 여자의 사진이 걸렸고 어릴 때부터 좋아하더니 여전히 좋아하는 고질라가 그려진 휴대폰의 바탕화면에는 누군지 모르는 여자의 웃는 사진이 있었다. 때때로 휴대폰을 보기만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네가 연애를 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네가 생겨났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여자 친구 소개시켜줘.”
“내가 왜?”
“그야 오이카와상은 이와쨩의 제일 친한 친구잖아?”
내가 모르는 모습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추하게도 변해버린 나의 감정이자 연애감정임을 숨기려 했지만 네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와쨩, 지금이 몇 시인데 전화를 하는 거야?”
“으으-.. 야, 나 좀.. 데리러 와라.. 푸-”
“술 취했어?”
“어. 그러니까- 데리러 와.”
스스로 자각 한 감정에 상처를 입었다. 왜, 물어봐 주지 않아? 오랜만의 전화는 내가 숨기려한 것들에 대해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와, 술 냄새... 이와쨩 얼마나 마신거야?”
“어어 왔냐―? 앉아, 앉아. 너도 먹어.”
“이와쨩 취했어― 술에 취하면 정신도 몸도 의지대로 할 수 없다고 싫어했잖아.”
“나랑은 먹기 싫다- 이거냐?”
“완전히 취했네.”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과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어눌하고 알아듣기 어려워진 발음.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서 굳으려는 표정을 억지로 풀었다. 빈 의자에 앉아 손에 간신히 걸린 잔을 뺏어 단숨에 마신 뒤 차가운 물 잔을 쥐어주었다.
“짜증나..”
“뭐가?”
“널 소개시켜주는 게 아니었어..”
아 하고 뒤에 떠오를 말이 무엇일지 바로 알아차렸다. 멍청한 이와쨩.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고서 턱을 괴었다. 조금이라도 마시길 바랐던 물은 그대로였고 그마저도 떨어뜨릴 것 같아 뺏어들었다.
“네가 왜 좋을까..”
“그러게, 내가 왜 좋을까.”
“네가 싫어.”
“나는 이와쨩이 좋은데.”
“너랑 친구 같은 거 하기 싫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마냥 변하는 얼굴이 안타까워 손을 뻗었다. 뜨거워진 얼굴이 손바닥에 닿았다. 이와쨩.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나는 이와쨩이 없으면 안 돼.”
“오이카와..”
“울지 마.”
쿵, 쿵 심장이 뛴다. 제발, 하느님.
“네가 미워.. 네가 미워-”
“날 미워하지 마.”
심장이 너무 아파요.
“토오루”
“좋아해, 이와쨩.”
덜컹.
심장이 멈추었다.
“오이..카와..?”
“아..”
“너, 지금..”
끝내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트린 쪽은 나였다.
“미안.”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의자와 테이블에 부딪히는 몸을 억지로 이끌고서 밖으로 나갔다. 도망쳤다. 하느님, 이것은 아니었어요. 심장이 너무 아파요.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어요.
“.....!”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삼키고 삼켜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성대를 잘라내듯 목을 긁었다. 뛰어서 도망친 곳은 집이었고 아무도 오지 못하게 모든 것을 잠갔다. 살려주세요, 하느님. 저는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잃어버릴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것에 괴로워하며 울리는 전화를 무시했다. 속에서 곪아가며 터트리지 못한 상처가 아파왔다.
이와쨩.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 하지메.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받지 않는 전화에 애가 탔다. 열리지 않는 문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이카와. 오이카와 토오루.
“제발 문 좀 열어줘..”
일그러진 얼굴에서 흐른 눈물에 모든 술기운이 달아났다. 네가 운다. 네가 울고 있다. 보고 싶지 않던 표정을 짓고 있다.
“왜 울고 있었어..?”
너를 울린 게 누구야?
“안에 있는 거 다 아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듣기라도 해.”
하느님, 제발 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여느 때처럼, 싸우고 이별했어. 이유도 같았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손안에 쥐어진 열쇠가 볼품없었다. 잠금쇠 하나에 완전한 벽이 생겼다. 사람을 부르면 열 수 있고 힘을 주면 부숴서라도 열 수 있는 문이지만 나의 방어벽으로 앞세워 닫았다. 차가운 문에 이마를 기대고서 눈을 감았다.
“꿈을 꿨어. 네 옆에 네 어리광을 받아주고 나쁜 버릇인 꽁꽁 숨기는 습관을 알아채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서 있었지. 그날은 너의 결혼식이었어.”
검은색보다는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 너라서 하얀색의 웨딩수트를 입은 네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검은색의 정장을 입은 내가 서 있었다.
“네 결혼을 축하해줬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웃는 널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행복하겠구나.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좋았어.”
꿈속에서의 나는 활짝 웃을 수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신혼집에 집들이고 갔어. 여행은 어딜 다녀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애들이랑 같이 술을 마시면서 놀았어. 넌 즐거워보였어.”
나는 즐겁지 않았어. 너와 그녀 사이에 아이가 생겼어. 널 닮아서 조금은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울음이 나왔지. 어느 때처럼 너는 내게 못생겼다 놀렸고 우리의 어린 시절 앨범을 꺼내보며 깔깔거리며 웃었어.”
널 닮은 아이가 눈동자만은 널 닮지 않았다.
“아이는 자랐고 아플 때면 네가 더 아픈 듯이 굴었어. 아픈 걸 싫어해서 칭얼거리던 녀석이 꾹 참고서 아이의 손만 잡고 있는 게, 네가 정말로 아버지가 되었구나 싶었지. 자랑스러웠어.”
그런 네 옆을 지키는 이가 나였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아이와 여인을 지킬 때, 비어버린 널 지키는 자리는 오직 나의 것이었다.
“좀 더 자라서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그때마다 찾아가 엉엉 우는 널 놀렸어.”
안에 있던 네가 밖으로 나와 이젠 꽃다발을 쥐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위치가 되었다. 나 또한 그랬다. 여전히 네게 줄 꽃다발을 샀고 오는 길에 있는 쓰레기통에 전부 버렸다.
“어느덧 어른이 된 너의 아이는 어여쁜 신부를 데려와 결혼식을 올렸어. 고운 옷을 입고서 너는 부모님 석에 앉아 있었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던 울보가 그날은 울지 않았어. 대신해서 활짝 웃고 있었지.”
어느덧 늙어버린 너와 내가 한 번 더 그날의 결혼식장에 섰다. 서로 앉는 자리가 달라졌다.
“손자가 태어났다며 즐거워하는 널 보았어. 유전이 뭐라고, 그 아이도 널 닮아서 웃음이 나왔어. 너는, 너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어.”
내가 줄 수 없는 행복 속에서 행복해 하는 널 보며 나 또한 행복해 했다.
“오로지 네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어. 그 행복을 엿보며.. 그 행복을 뺐고 싶다고 생각했어.”
심장 속에 박힌 커다란 돌이었다. 밀어내고 부숴봐도 꿈쩍 않는 돌이 처음으로 움직이며 목구멍을 지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뺏고 싶지 않았어. 좋아하니까, 너를 좋아하니까 뺏고 싶지 않았어..!”
눈이 아팠다. 뚝뚝 떨어지는 비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아해.. 좋아해, 오이카와. 그러니까 제발-..”
문 좀 열어봐..
진동이 울렸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폰을 서둘러 꺼낸 뒤 전화를 받았다. 오이카와! 이와이즈미가 이름을 부르자 수화기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왜 그걸...”
“오이카와..”
“왜 그걸 이와쨩이 맘대로 정하는 거야..?”
목소리에는 여전히 물기가 남아있었다.
“내 행복을 멋대로 정하지 마. 내 행복은, 내가 정해..”
멈추지 않던 것들이 하나만을 남기고 전부 멈추었다.
“이와쨩이 있는 게 내 행복이란 말야..”
“토오루”
“좋아해.. 좋아해, 하지메.. 제발 나 좀..”
행복하게 해줘.